2011.07.13 21:08
조선시대 사람들은 무늬에 담긴 상서로움이 옷을 지어 입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음으로서 스스로의 심리적 만족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조선 말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직물문양의 소재로는,석류,복숭아,불수감으로 구성된 도류불수무늬,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호리병과 복숭아꽃으로 구성된 호로무늬, 매화, 난초, 국화, 대로 구성된 사군자무늬, 여기에 부를 상징하는 모란과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등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더 나아가 이들 벽사나 길상을 상징하는 식물 소재 만으로는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고 여겨 착용자의 간절한 바람을 수, 복, 희, 만 자와 같은 문자자체를 직접 무늬로 도안하여 넣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전통직물의 가장 중요한 무늬소재는 단연 꽃으로, 그 중에서도 연꽃과 모란 무늬가 중요하게 사용되었고, 그 외에 네 종류의 꽃을 모아놓은 사양화 무늬가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연꽃무늬는 오랜 세월동안 폭 넓게 사용되어 온 식물무늬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각종 공예품 무늬로 활용되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옷감무늬 중에 가장 사랑을 받았던 무늬입니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키우던 연꽃은 수련의 일종으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가 원산지이며 끝이 뾰족한 꽃잎이 동그랗게 모여있는 탐스러운 꽃송이와 커다란 원형의 잎사귀, 씨가 들어 있는 둥근 꽃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꽃은 연화 또는 하화, 부용이라로도 불리웠는데, 불교에선 청결, 순결의 상징물이며, 유교에서는 군자의 청빈과 고고함을 상징하고, 도가에서는 팔선 가운데 하나인 하선고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신령스러운 꽃이기도 합니다. 또한 환생과 재생을 상징하기도 하며, <군방보>에서는 "식물은 꽃을 피운 뒤 열매를 맺으나, 연꽃은 꽃과 열매가 함께 나란히 생겨난다"고하여, 연생. 곧 '연이어 자손을 얻는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꽃의 상징성 덕분에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는 정원의 연못에 연꽃을 심는 것을 정신적인 멋의 추구로 여겼으며, 연못이 없으면 집 뜰에 넓적한 자배기에라도 연을 길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연꽃은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취향, 태도, 분위기에서 우러나는 멋의 대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서 시대정신이 반영된 이상미로 인식되어졌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연꽃에 대한 태도에 기인하여 일반사람들도 연꽃무늬가 옷감 전체에 이처럼 연꽃은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취향, 태도, 분위기에서 우러나는 멋의 대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서 시대정신이 반영된 이상미로 인식되어졌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연꽃에 대한 태도에 기인하여 일반사람들도 연꽃무늬가 옷감 전체에 가득차게 도안된 옷감을 매우 선호하게 되었고 남녀 모두 연꽃무늬의 옷을 입는 것을 그 시대의 구체턱인 이상미의 표현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조선시대 뿐만아니라 지금까지도 연꽃무늬는 직물문양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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