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2 16:21

 

 

 

행랑채와 안채 사이에도 정교한 역학 관계가 성립한다. 안채 역시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지표면을 사람 키 절반 정도로 높여놓았다. 또한 행랑채와 안채 사이에 담장을 설치해 영역을 구분했고, 담장에는 중문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양반집은 건물을 지음으로써 담장을 대신했다. 이렇게 되면 랑채와 안채로 연결되는 중문은 중문간이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 담장 역할을 하는 연속된 건물의 한 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안채와 행랑채 영역을 담장으로 구분하지 않고 건물로 구분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실용성의 차이다. 담장이 시각적 접근과 물리적 접근을 차단하는 기능에만 머물렀다면, 건물은 그뿐 아니라 창고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실용성을 더한 것이다. 하지만 아마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담장보다 건물이 훨씬 더 완벽하게 영역을 구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담장이 아무리 높다 한들 건물 높이만 못하고, 담장보다는 건물을 넘어가는 게 훨씬 어렵다. 시각적, 물리적으로도 담장보다 건물을 짓는 게 접근 차단에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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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안채와 행랑채 사이에 3미터쯤 되는 담장을 설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각적, 물리적 접근 차단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건물이 주는 만큼의 심리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두 개의 영역 사이에 담장이나 건물을 설치해 구분하는 방법은 시각적, 물리적 접근 차단 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심리적 거리는 당연히 두 영역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경계의 물리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두껍고 견고할수록 심리적 거리는 멀어진다. 심리적 거리를 조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영역 사이에 하나의 영역을 더 끼워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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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행랑채를 담장이 아닌 건물로 구분하는 것도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담장만으로도 시각적 물리적 구분이 가능하지만 사람이 활동하는 또 다른 영역을 배치함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더욱 멀게 하는 것이다.

 

중문간을 자세히 살펴보자. 중문간은 행랑채 쪽 담벼락과 안채 쪽 담벼락, 이렇게 두 개의 담벼락으로 구성된다. 당연히 개구부도 두 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각각의 개구부를 일직선상에 배치하지 않았다. 행랑채 쪽 담벼락에 난 개구부에 들어서면 바로 정면이 안채 쪽 담벼락으로 막혀 있다. 안채 쪽 담벼락에 난 개구부는 행랑채 쪽 담벼락에 난 개구부의 정면 방향에서 조금 비켜서 위치한다. 행랑채 쪽 개구부에선 안채 쪽 개구부를 통해 안채를 살짝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안채가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행랑채 하인들의 시각적 접근을 차단하는 교묘한 장치인 것이다. 또한 이 장치로 인해 안채로 출입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안채는 누구나 함부로 출입하는 곳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행랑채 쪽 개구부에서 안채 쪽이 살짝 보이도록 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하인들이 안채 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치로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인은 안채 쪽에 들어가도 되는지 안 되는 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에게 서구식 노크 문화가 없는 이유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아도 안쪽의 상황을 필요한 만큼만 눈치챌 수 있도록 해주는 고도로 발달된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치 중 하나가 창호지를 바른 문이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필요한 정도만 알 수 있게 한다. 동시에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안에서 필요한 만큼 알아차릴 수 있다. 문 안쪽의 상황을 필요한 만큼만 알리고 또 필요한 만큼 가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노크 문화가 필요 없었다. 이렇게 보면 노크는 별로 정교하지 못한 주거 장치에서 비롯한 문화라 할 수 있다.

양반집의 중문간도 창호지를 바른 문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밖에서는 안을 그리고 안에서는 바깥을 필요한 만큼만 살필 수 있다. 약간 비켜서 위치한 두 개의 개구부가 안채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큼만 시각적 접근을 허용한다.

 

 

 

 

 

이렇게 어렵게 안마당에 들어서면 안방과 대청, 건넌방 그리고 부엌으로 구성된 안채가 보인다. 안채도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지면에서 상당한 높이로 올려져 있다. 토방이라고 부르는 기단을 높게 쌓은 것이다. 이 기단의 높이 때문에 안채 안마당에 선 하인은 자연스레 안채 안방 문지방에 시선을 두게 된다. 행랑마당에서 사랑채 마루에 서 있는 주인의 발만 볼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안채에서도 하인은 주인의 허락 없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고개를 들더라도 발만 바라보고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주인은 하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하인은 주인의 발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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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기단이 건물을 높이려는 의도뿐이라면, 안채의 기단은 거기에 더해 특별한 행동을 염두에 두고 고안됐다. 안채 건물의 외주부와 기단의 외주부 사이에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폭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인들 중 일부는 기단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즉 하인들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해 그에 따라 출입할 수 있는 영역에 차등을 두었다. 누구는 기단까지 올라갈 수 있고, 누구는 안채 마당까지 출입할 수 있다. 물론 안채 마당에조차 출입할 수 없는 하인도 있다. 이렇듯 양반 집은 층층이 신분 차이를 보여주는 구조로 되어있다. 공간 구조에 따라 공간 점유자들은 자신의 신분과 역할을 자연스레 인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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