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3 02:55



김홍도 <모당 홍이상 평생도> 중 '초도호연' : 8폭에 걸쳐 그린 이 그림은 그 중 첫번째 그림이다. 아이 하나에 온 집안은 물론이고 이웃까지 들썩이는 잔치를 여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흥겨운 풍속이다. 국립박물관 소장.


한 기와집에서 돌잔치가 열리고 있다. 돌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아이 왼쪽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하얀 도포와 갓을 착용하고 있고, 아이 뒤쪽으론 문을 열고 담뱃대를 문 채 손자의 돌잔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마당에는 높은 벼슬아치의 집안일을 맡아보는 여자 하님들이 돌잔치를 구경하고 있으며, 꼬마들과 개도 보인다.
싸리로 엮어 만든 닭장 부근에는 몸종인 시비가 꼬마 아이를 보살피고, 대문에는 음식물을 담은 것은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를 이고 한 여자아이가 막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시끌벅적한 모습과는 달리 축하 손님은 왼쪽 모서리 부근에 기둥과 기둥 사이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뿐이라는게 의외다.
아직 돌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조촐하게 돌잔치를 하는 풍속 때문일까?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초도호연'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김홍도는 그의 나이 서른일곱인 1781년에 모당 홍이상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나누어 그렸는데, 홍이상은 풍산 홍씨의 중시조로 선조 6년 사마시를 거쳐 선조 12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장원 급제하고, 광해군 원년에 대사헌을 지낸 인물이다.
이 그림은 바로 홍이상의 어린 시절 돌잔치를 재연한 그림이다.

이 돌잔치의 주인공 홍이상이 돌상을 앞에 두고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이것저것 돌상을 정리하는 유모, 그 뒤로는 젊은 어머니 백씨가 보인다. 백씨는 일흔 여덟이 되던 선조 38년에 경수연의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기와 지붕 왼쪽 뒤로 보이는 나무에 잎사귀가 보이지 않는다. 태어난지 1년 된 아이가 마루에서 돌잔치를 하고 있으니, 짐작컨데 찬바람은 가신 초봄쯤이 아닐까. 김홍도는 <모당 홍이상 평생도>를 그리면서 홍이상과 관련한 여러가지 사실을 고증해서 그렸다기 보다는 그림으로 표현될 만한 상황을 상상해서 그렸을터이다.

그림에서 사내아이는 오색의 돌옷을 입고 있다. 돌잔치에서 사내아이는 연보라색 풍차바지에 옥색이나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남색 돌띠를 매었다. 개화기 이후에는 그 위에 남색 조끼와 연두색 길에 색동 소매를 단 마고자를 덧입기도 했다. 집안 형편이 좋은 경우에는 오색으로 지은 까치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전복과 복건 또는 호건을 착용했다. 여기에 돌띠라 하여 뒷등 부분에는 12개월을 상징하는 열두개의 작은 염낭에 여러 종류의 곡식을 담아 매달아 주며 부귀영화를 염원하기도 했다. 앞에는 수를 놓은 주머니를 채워 주었고, 한쪽에는 만수무강, 수복강녕등 길상 문자를 수놓아 늘여 주었다. 

돌상차림에서는 요즘은 아들과 딸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만, 예전에는 아들에게는 무운과 용맹을 상징하는 활과 화살을, 딸에게는 바늘 및 색지, 자, 실 등을 놓아 남자와 여자의 기본을 지니기를 바라기도 했다. 

<양아록>에는 이문건의 손자 숙길이 돌잔치에 붓과 먹, 옥에 금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안에 장식을 한 고리인 투환, 활, 쌀, 도장, 책 의 순서로 집었다고 적혀있다.

이문건은 손자가 붓과 먹을 집은 것은 문장으로 업을 삼을 조짐으로, 옥으로 만든 투환을 잡은 것은 덕성을 갖춘 인물이 될 조짐으로 보았고, 활을 잡은 것은 무예도 겸비한 인물이 된다는 것으로, 쌀을 집은 것은 잘 자라 강건하게 사는 것으로, 도장을 집은 것은 관직에 나가 임금을 보필할 것으로 해석했다. 돌 상에 올려둔 것 중에 나쁜 것은 한 가지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옛 그림속 양반의 한평생  저자 : 허인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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