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2 16:05

 

 

된 형태의 조선시대 양반가는 크게 세 개의 영역을 포함한다. 하나는 남자 주인의 공간, 다른 하나는 여자 주인의 공간, 그리고 하인들의 공간이다. 이들 공간에는 사랑채, 안채, 행랑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각각의 공간은 그 공간에서 필요한 특정한 행동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다.

 

대문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 바로 행랑채이다. 이곳은 양반집 하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행랑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문과 연결된 담장을 따라 회랑처럼 늘어서 있다. 그리고 행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또 하나의 담장이 설치된다. 행랑채에서 안채를 들여다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행랑채에 사는 하인들의 안채 출입도 제한된다. 행랑채에 사는 하인이 안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문을 지나야 하는데, 아무나 지나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랑채와 안채가 시각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물리적 접근 역시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데 반해, 행랑채와 사랑채의 관계는 좀 덜 분리돼 보인다.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담장이 있거나 별도의 출입구가 있는 경우도 드물다. 행랑채에서 사랑채를 쉽게 쳐다볼 수 있으며 가까이 다가서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을 시 언제든 뛰어 갈 수 있다. 사랑채에서는 행랑채와 그 앞마당(행랑마당)이 잘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둘의 접근성이 행랑채와 안채보다 용이한 까닭은 바깥주인이 행랑채를 감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랑채에서 감시가 용이한 부분에는 행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도 잘 보이도록 되어 있다. 이 역시 바깥주인이 안채의 사람들을 외부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행랑채와 사랑채가 물리적 접근과 시각적 접근이 서로 용이하도록 돼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영역의 구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행랑채는 엄연히 신분이 낮은 하인이 사는 곳이고, 사랑채는 그 집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바깥주인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행랑채와 사랑채의 영역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분된다. 사랑채 지표면을 행랑채 보다 높게 하는 것이다.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행랑채를 두고 좀 더 먼 곳에 사랑채를 배치한다. 그리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앞서 말한 대로 바닥을 돋우어서 행랑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지어지도록 하고, 건물 자체의 높이도 행랑채와 차이를 둔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채 일부에 누마루를 만들어 사랑채 안에 더 높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행랑마당에서 사랑채 누마루를 바라봤을 때 행랑마당에 서 있는 사람과 누마루에 올라서 있는 사람이 같은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게끔 의도한 것이다. 이때의 높이는 대개 행랑마당에 선 하인이 볼 때, 그 시선이 사랑채 누마루에 닿도록 조정한다. 즉 하인들이 고개를 들지 않는 이상 주인의 발 정도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감히 주인과 눈을 마주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은 하인의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대체로 사랑채의 누마루는 담장 너머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양반집에서 담장 밖이 보이는 유일한 공간인 이곳에 서서 집 앞에 위치한 안산이며 멀리 조산까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채 누마루에서 가장 잘 내다보이는 곳에 바로 사랑채 주인이 소유한 농토가 있다. 누마루에 앉아서 자라는 곡식과 땀 흘려 일하는 일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랑채에 볼 관() 자에 심을 가() 자를 써 관가정’ (농사를 짓는 풍경을 바라보는 정자)이라고 이름 붙인 양반집도 있다.

사랑채에는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감시하는 바깥주인이 있고, 담장 너머 들녘에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이 있다. 사랑채와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 바깥 들녘 간의 공간 구조는 각각의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의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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